투자 격언 중에 제일 많이 인용되는 말이 있죠. 남들이 두려워할 때 사고, 남들이 욕심낼 때 팔라는 것.
문제는 "남들이 두려워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입니다. 뉴스를 봐도 사람마다 다르게 말하고, 커뮤니티 분위기는 늘 시끄럽고요. 그래서 이 심리를 아예 숫자로 만든 지표가 나왔습니다. 공포탐욕지수예요.
숫자가 생기니까 격언이 갑자기 실행 가능한 규칙처럼 보입니다. "지수가 극단적 공포면 산다." 깔끔하죠. 그런데 여기서 빠지는 게 두 개 있습니다.
이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나
먼저 정체부터. 원조는 미국 CNN이 만든 것이고, 0에서 100 사이 값으로 시장 심리를 표시합니다. 0에 가까우면 극단적 공포, 100에 가까우면 극단적 탐욕이에요.
느낌으로 매기는 게 아니라 일곱 개 지표를 섞어서 계산합니다.
- 시장 모멘텀
- 주가 강도
- 주가 폭
- 풋옵션과 콜옵션 비율
- 시장 변동성
- 안전자산 수요
- 정크본드 수요
이 일곱 개를 각각 점수로 바꾼 뒤 같은 비중으로 평균을 냅니다. 코스피를 대상으로 비슷하게 계산해서 보여주는 국내 사이트들도 있고요.
여기까지 보면 꽤 그럴듯합니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니까요.
빠진 것 하나: 극단은 더 극단으로 갈 수 있다
첫 번째 함정은 이겁니다. 지수에는 바닥이 있지만 주가에는 없어요.
지수는 0 아래로 못 내려갑니다. 그런데 지수가 극단적 공포를 가리킨 뒤에도 주가는 얼마든지 더 빠질 수 있어요. 온도계가 영하 10도를 가리켜도 날씨는 영하 20도까지 갈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온도계가 더 못 내려간다고 추위가 멈추는 게 아니잖아요.
실제로 역사적으로 극단적 공포 구간이 좋은 매수 기회였던 경우가 많다는 얘기는 자주 나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에요. 다만 "많았다"와 "이번에도 그렇다"는 다른 문장이고, 그 사이에서 계좌가 버텨야 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는 지수가 말해주지 않습니다.

빠진 것 둘: 이미 벌어진 일의 요약이다
두 번째는 더 중요합니다. 구성 항목을 다시 보세요. 모멘텀, 변동성, 안전자산 수요. 전부 이미 일어난 움직임을 재는 숫자입니다.
즉 이 지수는 앞을 내다보는 도구가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한 줄로 요약해주는 도구예요. "요즘 시장이 겁먹었구나"를 빠르게 알려주는 거지, "그러니까 내일 오른다"를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이걸 헷갈리면 지표를 시계처럼 쓰게 됩니다. 몇 시인지 알려준다고 믿고 행동하는 거죠. 그런데 이건 온도계예요. 지금 몇 도인지만 알려줍니다.
그럼 어디에 쓰나
쓸모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온도계를 온도계로 쓰면 됩니다.
1. 내 감정과 대조하는 용도 제일 실용적인 쓰임이라고 봅니다. 내가 지금 불안해서 팔고 싶은데 지수도 극단적 공포라면, 내 결정이 시장 분위기에 휩쓸린 것일 가능성을 한 번 의심해볼 수 있어요. 반대로 나만 신나 있는데 지수는 중립이면 그것도 정보고요.
2. 조건 중 하나로만 매수 여부를 이 숫자 하나로 정하지 않는 겁니다. 계획서에 이미 있는 조건들이 충족됐을 때 참고 항목으로 한 칸 더 얹는 정도가 적당해요. 지표를 방아쇠로 쓰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이동평균선 글에서도 다뤘는데, 대상만 바뀌었지 구조는 같습니다.
3. 극단이 얼마나 오래 갔는지 같이 보기 숫자 하나만 보지 말고 최근 흐름을 같이 보는 게 낫습니다. 어제 갑자기 공포로 떨어진 것과 3주째 공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상황이 다르니까요.
지수가 극단일 때 실제로 벌어지는 일
한 가지 더 짚어둘 게 있어요. 지수가 극단적 공포에 있을 때는 호가가 벌어지고 변동성이 커집니다.
무슨 말이냐면, 사려는 가격과 팔려는 가격의 간격이 평소보다 넓어져요. 겁먹은 시장에서는 서로 급하게 던지고 급하게 받으니까요. 그래서 같은 종목을 사도 평소보다 불리한 가격에 체결되기 쉽고, 하루 안에 몇 퍼센트씩 오르내리는 일도 흔해집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평소 기준으로 짜둔 손절폭이 이 구간에서는 너무 좁아지기 때문입니다. 평소 3% 움직이던 종목이 하루에 8%씩 흔들리면, 방향을 맞혀도 중간에 털리고 나오게 돼요.
그래서 지수가 극단으로 갈수록 오히려 크기를 줄여서 들어가는 쪽이 안전합니다. 무섭다고 안 하는 게 아니라, 같은 확신이면 평소보다 작게. 이건 겁이 아니라 계산이에요.
심리는 아래층이 아니라 옆에 있다
전에 시장을 2층 건물로 나눠본 적이 있어요. 위층이 돈, 아래층이 실적이라고요(그 글). 심리는 그 두 층 중 하나가 아니라 건물 전체의 체감온도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지표가 극단으로 갔을 때 물어야 할 질문은 "지금 사야 하나"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됐나" 쪽입니다. 금리 때문인지, 실적 때문인지, 특정 사건 때문인지. 원인을 알면 그게 언제 풀릴지도 대충 가늠이 되는데, 지수 숫자만 보면 그게 안 보여요.
저도 무서운 날에는 숫자 하나로 결론이 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가 있었다면 이미 모두가 쓰고 있었겠죠. 온도계는 옷을 대신 입혀주지 않더라고요.
이 글은 개인의 공부 기록이며 특정 자산의 매수나 매도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본인에게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면책조항을 봐주세요.